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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Loss of Meaning

유대인의 Why? 사고법 을 읽고

유대인의 Why? 사고법

이시즈미간지 지음

권혜미 옮김

머니플러스 2015. 8. 20



유대인의 Why? 사고법은 책을 구경하러 갔던 서점에서 눈에 띄어서 골랐던 책이다. 충분한 유대인의 사고법을 보여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유대인에 관한 책은 일본인이 많이 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글에서 본인이 유대인이라고 선언하고 유대인으로써 사고하는 방식과 아이들에게 사고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길지 않게 소개한다. 생각보다 오래 읽었던 책이지만, 본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하면서 여러 랍비들과의 여러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두가지 얻은 부분이 있다. ‘?’ 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라는 질문 요즘 시대에 사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어떠한 문제가 어떠한 현상을 보더라도?’라는 질문을 한다고 한다. 별거 아니지만 질문에는 중요한 물음인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아를 찾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세상을 다르게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이라던지 질문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자녀들에게 다른 시야를 넓혀주는 밥상머리 교육이나, 탈무드나 성서를 공부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교육방식이 그러하다. 다른 것은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유대인이 다름을 있었던 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너무 실망을 했다. 개종한 유대인인 저자의 배경 지식의 문제인지 번역의 잘못된 오역인지 너무나 읽으면서 답답함을 너무나 느꼈다. 성경(저자의 입장에서는 성서) 내용을 설화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과거 구약 시대의 사건을 그저 우리가 말하는 있을지도 모를 처럼 써나갔다. 하지만 내용 중엔 유대인은 그것을 사실로 믿는다 라는 문구 조차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이 것인지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글인지 도무지 없다. 내가 봤을 때는 억측적인 부분이 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으로써 이들의 사고를 이해할 없다는 말이 사실이다. 하지만 글이 그렇게 나오고, 성경(또는 성서) 내용조차 틀린 것을 보면 뭔가 많이 크게 문제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연필을 들고 책을 보고 있는 입장인지라 책에 얼마나 많은 ‘X’표와 ‘—‘ 긁고 수정 하는 얼마나 많은 손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도 같은 반응이 나오니 어쩔 없이 책이 점점 흥미가 떨어지고, 차라리 비유로 쓰는 내용이 없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본 바로는 Why? 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중요하다고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의미를 찾는 일을 안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역시 답을 찾는 연습을 너무나 많이 탓으로 돌릴 밖에 없다. 나는 누구나 나를 아는만큼 행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이 해야 하며, 욕심도 그만큼 있다고 자부한다. 나에게 아직 관대한 부분이 남아서 해내지는 못하지만.. 암튼 그만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내가 나아가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를 다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계속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연습을 한다고 생각한다. 순간 순간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있다. 이전엔 너무 익숙한 응답(또는 은혜) 따라가다 보니 자신이 없어진 것을 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얼마나 것인지 알고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취해 나가길 원하시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why? 질문을 해야 하고 그를 통해서 사건, 사람, 등에서의 응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았던 책이지만 유대인의 모습을 몇몇 살펴보면서 배울 점들은 있었다. 질문 하는 . 그게 누구던지 간에 질문을 하고 내가 해야 함에 당위성을 찾아가는 연습은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리고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의견도 나눠보면서 넓은 생각을 갖기 위해 애써야 함을 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만난 후배가 있다. 성경의 인물들에 대해서 파봐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었다. 저마다의 방식과 저마다의 방법을 가지고는 일관되게 자기의 중심적으로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는 모임을 계속 만들고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다른 관점을 있는 연습이 충분히 필요로 하다는 것이다. 길지 않지만 짧게라도 그런 연습의 시간은 충분히 필요로 하다. 어떻게 진행될 궁금한 부분이다.